전체 글11 뒤러의 문화적 영향 문화적 영향잘못된 묘사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널리 쓰였다.[3] 이는 18세기 후반 제대로 된 코뿔소의 묘사가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뒤러는 아마 이러한 사태를 예상하고, 고의적으로 다른 판화보다 값이 싸고 복사하기 쉬운 목판화로 그렸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28] 뒤러의 그림은 제바스티안 뮌스터의 '코스모그라피아 (Cosmographiae)' (1544), 콘라트 게스너의 '동물의 역사' (1551), 에드워드 탑셀의 '4족 짐승의 역사' (1607) 등 많은 자연학자의 문서에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드로 데 메디치는 1536년 6월, "Non vuelvo sin vencer" (옛스페인어로 '나는 승리를 안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뜻)의 좌우명과 함께 뒤러의 목판화에 기반해 그린 코뿔소를.. 2025. 3. 29. 뒤러의 목판화 2 뒤러의 목판화는 코뿔소 전체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였다. 그는 코뿔소를 딱딱한 판으로 덮힌 동물로 묘사하였다. 목에는 고지트, 가슴 쪽에는 흉갑, 그들을 잇는 리벳처럼 몸 전체가 갑옷을 두르고 있는 것으로 그렸다. 그는 코뿔소의 등에 작은 뿔을 그렸고, 비늘로 뒤덮어진 다리와 톱과 같이 뾰족한 엉덩이도 그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어떤 특징도 코뿔소에는 나타나 있지 않는다.[2][3] 뒤러가 묘사한 이런 특징들은 코끼리와 싸우려고 만들었던 플레이트 아머의 부분일 수도 있고,[23] 인도 코뿔소의 두꺼운 피부를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뒤러가 착각했거나 상상해서 그린 것일 수도 있다.[주해 5] 또한, 뒤러는 비늘로 덮인 몸을 그렸다. 비늘로 덮인 몸을 그린 이유는 위쪽 다리와 어깨를 뒤덮은 사마.. 2025. 3. 29. 뒤러의 목판화 1 뒤러의 목판화알브레히트 뒤러가 1515년 잉크펜으로 그린 코뿔소이다. 현재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사본에 있는 설명에는 코뿔소가 리스본에 1513년에 도착했다고 써져있다.[18]모라바의 상인이자 인쇄가인 발렌팀 페르난데스는 리스본에서 코뿔소를 잠깐 보고 1515년 6월에 뉘른베르크에 사는 친구에게 코뿔소를 묘사한 편지를 보냈다.[19] 그 무렵 익명의 화가가 코뿔소를 그린 그림이 동봉된 또 다른 편지가 리스본에서 뉘른베르크로 보내졌다. 안트베르펜의 교역소 사람들과 친분이 있었던 뒤러[20]는 그 편지와 그림을 보았다. 코뿔소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뒤러는 그것을 바탕으로 펜과 잉크로 그림을 그렸고[주해 3], 그가 그린 그림을 반대로 인쇄하여 목판화를 만들었다.[17][21]목판화에는 독일어로 대 .. 2025. 3. 29. 교황에게 가는 길 교황에게 가는 길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한 후, 마누엘 1세의 해군 부대는 극동에 있는 섬들을 탐험했다. 그 섬들을 가지려면 교황의 승인을 얻어야 했기 때문에 교황에게 잘보이기 위하여 마누엘 1세는 그 전 해에 한노라는 이름의 인도에서 온 흰코끼리를 선물로 줬던 것처럼 코뿔소를 메디치 가문의 교황 레오 10세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다.1515년 12월, 은색 접시와 향신료 등 다른 귀중품들과 같이 코뿔소는 꽃으로 치장된 초록색 목걸이를 가지고 교황의 선물용으로 타구스강에서 로마로 가는 선박에 실어졌다.[14] 선박은 1516년 마르세유 근처를 지나갔다. 때마침, 프랑수아 1세가 프로방스의 생막시맹라생트봄에서 마르세유로 돌아왔고, 코뿔소의 모습을 보기 원했기 때문에 선박은 1월 24일 마르.. 2025. 3. 29. 리스본에서 리스본에서120일의 빠른 항해 이후, 1515년 5월 20일, 코뿔소는 벨렝탑 근처에 있는 리스본에 내려졌다. 후에 벨렝탑은 코벨 밑에 코뿔소 머리 모양의 가고일로 장식하기도 했다.[11] 코뿔소는 로마 시대 이후로 유럽에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코뿔소는 전설의 동물로 인식 되어 있었고, 베스티아리에서는 코뿔소를 유니콘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코뿔소의 출현은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다.운반된 코뿔소는 에스타우스 궁전에 있는 코끼리 및 다른 짐승들과 분리되어 리스본에 있는 리베이라 궁전의 마누엘 1세의 동물원에 방치되었다. 1515년 6월 3일, 삼위일체 대축일인 이 날에, 마누엘 1세는 대 플리니우스의 코뿔소와 코끼리가 서로 원수지간이라는 주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그의 수집된 동물 중 한 새.. 2025. 3. 29. 코뿔소 외교 선물지오바니 자코모 페니가 1515년 7월 로마에서 그린 코뿔소. 코뿔소를 묘사한 판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1514년, 포르투갈령 인도의 통치자인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가 캄베이(현재 구자라트)의 왕인 무자파 2세에게, 디우 섬에 요새를 짓는 것을 허락받기 위해 대사를 보냈다. 비록 허락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코뿔소를 포함한 외교용 선물들이 교환되었다.[7] 그 당시에는 여러 나라의 지배자들은 동물원을 위해 각 국의 고유종을 교환하기도 하였다. 특히나 코뿔소는 많이 교환 되는 종이었다. 알부케르크는 구자라트어로 '간다(ganda)'라고 하는 선물용 코뿔소와 마누엘 1세는 '오셈(Ocem)'이라 하는 인도인 관리자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선물용 코뿔소와 인도인은 1515년 1월에 고아를 떠난[8] .. 2025. 3. 29.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