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의 목판화는 코뿔소 전체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였다. 그는 코뿔소를 딱딱한 판으로 덮힌 동물로 묘사하였다. 목에는 고지트, 가슴 쪽에는 흉갑, 그들을 잇는 리벳처럼 몸 전체가 갑옷을 두르고 있는 것으로 그렸다. 그는 코뿔소의 등에 작은 뿔을 그렸고, 비늘로 뒤덮어진 다리와 톱과 같이 뾰족한 엉덩이도 그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어떤 특징도 코뿔소에는 나타나 있지 않는다.[2][3] 뒤러가 묘사한 이런 특징들은 코끼리와 싸우려고 만들었던 플레이트 아머의 부분일 수도 있고,[23] 인도 코뿔소의 두꺼운 피부를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뒤러가 착각했거나 상상해서 그린 것일 수도 있다.[주해 5] 또한, 뒤러는 비늘로 덮인 몸을 그렸다. 비늘로 덮인 몸을 그린 이유는 위쪽 다리와 어깨를 뒤덮은 사마귀 같은 혹을 가진 거칠고 털이 없는 인도 코뿔소의 가죽의 모습을 반영하려고 시도한 것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도에서 포르투갈까지 4달에 걸친 항해로 인해 생긴 피부염을 묘사한 것일 수 도 있다.[24]
빈의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소장 중인 한스 부르크마이어의 1515년 작품.
다음으로 그려진 코뿔소 목판화는 뒤러가 뉘른베르크에 머물던 때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한스 부르크마이어가 그린 목판화이다. 부르크마이어는 리스본과 뉘른베르크의 상인들과 자주 교류했다. 하지만 그가 뒤러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렸는지 실제로 포르투갈에서 코뿔소를 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25] 그가 그린 그림은 뒤러가 상상해서 그린 부분을 없앴고, 코뿔소를 행동을 막기 위해 사용된 사슬을 그려서 더 사실과 비슷했다.[25] 하지만 뒤러의 목판화가 더 영향력이 강하여 부르크마이어의 목판화는 그렇게 뒤러의 목판화에 가려졌다. 뒤러의 그림은 여러 판 인쇄된 반면, 부르크마이어의 그림은 오직 한 쇄만 보존되어있다.[주해 6]
뒤러는 1515년에 그의 첫 번째 목판화를 발행했다. 제목에 오직 5줄만 써져 있어서 다른 판들과는 구별되었고[10], 1528년 뒤러가 죽은 뒤에도 많은 그림들이 뒤러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26] 나중의 그림들은 제목의 글이 6줄이다.[10] 키아로스쿠로 양식을 사용한 목판화를 만들기 위해 1620년경에는 색칠한 판이 만들어졌다.[26][27] 비록 나중의 그림들은 코뿔소의 다리가 찢어졌거나 구멍이 났지만 원본은 아직도 온전하게 유지되고 사용되고 있다.[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