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에게 가는 길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한 후, 마누엘 1세의 해군 부대는 극동에 있는 섬들을 탐험했다. 그 섬들을 가지려면 교황의 승인을 얻어야 했기 때문에 교황에게 잘보이기 위하여 마누엘 1세는 그 전 해에 한노라는 이름의 인도에서 온 흰코끼리를 선물로 줬던 것처럼 코뿔소를 메디치 가문의 교황 레오 10세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다.
1515년 12월, 은색 접시와 향신료 등 다른 귀중품들과 같이 코뿔소는 꽃으로 치장된 초록색 목걸이를 가지고 교황의 선물용으로 타구스강에서 로마로 가는 선박에 실어졌다.[14] 선박은 1516년 마르세유 근처를 지나갔다. 때마침, 프랑수아 1세가 프로방스의 생막시맹라생트봄에서 마르세유로 돌아왔고, 코뿔소의 모습을 보기 원했기 때문에 선박은 1월 24일 마르세유의 섬에서 잠시 정박했다.[주해 2]
라파엘로 산치오가 1518년에서 1519년 동안 그린 "동물 창조". 코뿔소가 나무 오른쪽에, 한노로 추정되는 코끼리는 그 왼쪽에 있다.
배는 다시 항해를 시작했고, 선박은 리구리아 주의 해안에 있는 라스페치아의 북부인 포르토 베네레를 지나는 중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만났다. 갑판에 체인과 족쇄로 묶인 코뿔소는 수영을 할 수 없었고 익사하였다. 코뿔소의 시체는 빌프랑슈쉬르메르에서 발견되었고, 코뿔소의 시체는 박제를 했던 지역인 리스본으로 돌아갔다. 피부는 1516년 2월, 임파글리토(이탈리어로 '짚과 함께 박제된'이란 뜻)로 전시하기 위해 로마로 보내졌다고 한다. 만약 코뿔소가 로마에 도착했더라면, 그것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로 옮겼을 수도 있고, 로마 약탈에서 죽었을 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간에 코뿔소가 리스본에서만큼의 영향을 로마에서 끼치지는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